우리는 누구나 한때 꿈을 꾸었다.
어린 시절의 꿈에는 그것을 이루어야 하는 이유도, 그것을 통해 얻어야 할 결과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좋아했기 때문에 바라보았고, 바라는 동안에는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그때의 꿈은 목적이라기보다 하나의 세계에 가까웠다. 우리는 아무런 계산 없이 그 안으로 들어가 오래 머물 수 있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세상을 알아갈수록 꿈의 범위는 달라진다. 현실적인 가능성과 타인의 시선, 실패했을 때 감당해야 할 상처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관계 안에서도 마음보다 이해관계를 살피고,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보다 그 관계가 나를 다치게 하지는 않을지를 먼저 계산한다. 그렇게 꿈은 점차 안전한 크기로 줄어들고, 때로는 스스로 포기할 수 있는 모습으로 바뀐다.
나의 작업은 그 과정에서 잃어버린 마음을 바라보는 데서 시작한다.
나는 꿈을 이루는 방법보다, 우리가 언제부터 꿈을 자유롭게 바라보지 못하게 되었는지를 묻는다. 그리고 상처받지 않으려는 마음과 여전히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이 한 사람 안에서 어떻게 공존하는지를 그린다. 내 작업에서 감정과 관계, 꿈은 서로 분리된 주제가 아니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감정을 배우고, 감정으로 인해 꿈을 꾸며, 같은 감정 때문에 꿈으로부터 멀어지기도 한다.
EL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만 그 안에 멈춰 있는 존재이며, IRIS는 감정을 직접 느끼지 않지만 모든 것을 바라보는 존재이다. 두 존재 사이의 거리에는 다가가고 싶은 마음과 다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함께 놓여 있다. 서로를 바라보면서도 쉽게 닿지 못하는 그들의 모습은, 관계 앞에서 망설이고 꿈 앞에서 자신을 보호하게 된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다.
작가명 ‘120도’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볼 때의 시선에서 시작되었다. 고개를 든다는 것은 현실을 외면하는 일이 아니라, 익숙한 기준에서 잠시 벗어나 다른 가능성을 바라보는 태도이다. 나에게 하늘과 꿈은 도피의 공간이 아니다. 이미 좁아진 마음 안에서 다시 한번 바랄 수 있도록 시선을 움직이는 공간이다.
니체는 아이를 “순수이자 망각이며, 새로운 시작이자 놀이이고, 스스로 구르는 바퀴이며, 삶을 향한 신성한 긍정”이라고 말했다. 나는 이 문장을 어린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세상의 조건과 상처를 알게 된 이후에도 다시 무언가를 좋아하고, 바라고, 시작할 수 있는 힘에 관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그림은 사라진 꿈을 복원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꿈을 잃었다고 믿는 마음속에 아직 남아 있는 작은 바람을 발견하려 한다. 선명한 색과 단순한 형태, 인물 사이의 여백은 말로 표현되지 못한 감정과 멈춰 있는 시간을 담는다. 관객이 그 여백 속에서 잊고 있던 자신의 감정과 마주하고, 한때 아무런 대가 없이 좋아했던 것을 다시 떠올리기를 바란다.
어쩌면 꿈은 이루어야만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다시 바라볼 수 있게 되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Keep your chin up.
Look up to the sky.